우주는 존재한다.
이 사실은 너무 당연해서
우리는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.
그러나 한 걸음만 물러나 생각해 보면,
이보다 더 이상한 사실은 없다.
왜 아무것도 없는 대신
무언가가 존재하는가?
왜 우주는 탄생했고,
왜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,
왜 별과 은하, 시간과 공간,
그리고 질문을 던지는 존재까지 포함하게 되었을까?
과학은 오랫동안
“우주가 어떻게 진화했는가”에 집중해 왔다.
빅뱅, 인플레이션, 은하 형성,
블랙홀과 암흑에너지까지
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매우 정교하게 재구성했다.
그러나 이 모든 설명의 끝에는
반드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.
왜 우주는 존재하는가?
이번 100번째 글에서는
지금까지 다뤄온 모든 주제—
빅뱅, 시간의 화살, 다중우주, 정보, 시공간—을 하나로 엮어
과학이 제시하는 ‘존재의 이유’가 무엇인지,
그리고 이 질문 앞에서
과학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
차분하고 깊이 있게 정리한다.

1. 과학은 ‘왜’라는 질문을 다룰 수 있을까?
먼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.
과학은 전통적으로 **“어떻게”**를 설명하는 학문이다.
-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
- 은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
- 법칙은 어떻게 작동하는가
그러나 현대 우주론은
“왜 그런 조건이 선택되었는가?”라는 질문을
피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.
이유는 단순하다.
- 물리 상수는 극도로 정교하다
- 조건이 조금만 달라도
별·원자·생명은 불가능하다
즉,
우주는 설명되기에는 너무 정확하다.
2. 첫 번째 답변 — 우주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
가장 강한 과학적 태도는 이것이다.
우주는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.
이 관점에 따르면:
- 어떤 ‘무’도 불안정하다
- 진공조차 에너지를 가진다
- 양자 요동은 피할 수 없다
이 논리에서
우주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
존재의 자연스러운 상태다.
- 무(無)는 유지될 수 없고
- 무엇인가가 생기는 것이 오히려 기본
즉,
우주는 선택이 아니라 결과다.
3. 두 번째 답변 — 우주는 가능한 것 중 하나다 (다중우주)
96번째 글에서 다룬 다중우주 이론은
이 질문에 전혀 다른 답을 준다.
- 가능한 모든 우주가 존재
- 우리는 그중 하나에 속함
- 질문의 방향이 바뀜
이 관점에서는
“왜 이런 우주인가?”라는 질문은
이렇게 바뀐다.
이런 우주에서만
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.
즉,
우주의 존재 이유는
관측자의 존재와 분리될 수 없다.

4. 세 번째 답변 — 우주는 자기 설명적이다
일부 이론 물리학자들은
우주가 외부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본다.
- 법칙은 법칙을 설명한다
- 구조는 스스로를 유지한다
- 추가 원인은 필요 없다
이 관점에서
“왜 우주는 존재하는가?”라는 질문은
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.
마치
“왜 삼각형의 내각합은 180도인가?”라고 묻는 것처럼,
우주는 그렇게 존재하도록 정의된 구조라는 것이다.
5. 네 번째 답변 — 정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
98·99번째 글에서 다룬
정보 보존과 시공간의 탄생은
아주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.
-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
- 우주는 정보 구조의 진화다
- 존재란 정보의 표현 방식이다
이 관점에서 보면:
- 우주는 무언가를 “하기 위해” 존재하지 않는다
- 우주는 정보를 보존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이다
즉,
존재의 이유는 목적이 아니라 지속성이다.
6. 시간의 화살과 존재의 방향성
97번째 글의 핵심은 이것이었다.
- 시간은 엔트로피 증가 방향
- 우주는 낮은 엔트로피에서 시작
- 변화는 필연적
이를 존재의 관점에서 보면
우주는 정지할 수 없는 구조다.
- 변화가 가능한 상태가 존재라면
- 변화의 방향이 곧 의미가 된다
우주는
멈추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,
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.
7. 우주는 ‘질문을 만들기 위해’ 존재하는가?
가장 흥미로운 해석은
존재의 이유를 결과에서 찾는 것이다.
- 우주는 구조를 만들었다
- 구조는 복잡성을 낳았다
- 복잡성은 의식을 만들었다
- 의식은 질문을 던진다
이 흐름에서 보면
우주는 단순한 물리 시스템이 아니라
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했다.
우주는
자기 자신을 질문하기 위해
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.
8. 과학이 멈추는 지점
정직하게 말하자면,
과학은 여기까지다.
- 우주의 구조는 설명할 수 있다
- 법칙은 기술할 수 있다
- 조건은 비교할 수 있다
그러나
“왜 존재 자체가 가능한가?”라는 질문은
과학과 철학의 경계에 놓여 있다.
이 질문은
답을 요구하기보다는
사유의 깊이를 요구한다.
9. 철학적 해석 — 존재는 이유를 필요로 할까?
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.
존재는 반드시 이유를 가져야 하는가?
가능한 답은 둘이다.
- 존재는 이유를 가진다
- 존재는 이유 이전의 사실이다
어느 쪽이든
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다.
- 우리는 존재한다
- 우리는 질문한다
- 우리는 우주 안에서
우주를 이해하려 한다
이 자체가
우주가 만든 가장 놀라운 현상이다.
🌍 결론 — 100번째 글의 의미
우주는
설명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.
그러나 우리는
설명할 수 있는 존재로 등장했다.
이 시리즈 100편은
우주의 시작에서 끝,
공간과 시간,
정보와 존재,
그리고 질문하는 인간까지
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.
우주는 어쩌면
답을 주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,
질문이 가능하도록 존재하는 구조일지도 모른다.
그리고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,
우주가 만든
가장 정교한 결과일 것이다.
✅ 글을 마치며
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
현대 우주론이 도달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.
과학은 빅뱅, 다중우주, 정보 보존, 시간의 화살 등을 통해
우주의 구조와 조건을 설명하지만,
존재의 궁극적 이유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다.
이 질문은 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
우주와 인간의 위치를 동시에 재정의한다.